주인공은 탐정. 사건은 탐정이 현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우연하게 발생한다. 탐정이 사는 곳에 바로 사건이 숨쉬고 있다. 탐정은 자신의 이름을 잔수라고 밝힌다. 사람들은 그를 잔이라고만 부른다. 잔은 남자냐, 여자냐 소리를 듣지만 어쩔 땐 여자라고, 또 어쩔 때는 남자라고 이야기하며, 그리고 또 어쩔 땐 두 가지 다 아니라고도 한다. 이름은 어떻게 잔수인지, 무...
내가 어쩔 수 없이 여지찬을 불렀던 날, 곽한결은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여자친구와 헤어졌노라고 이야기했고, 난 별 생각없이 낄낄대다가 다른 애들처럼 대강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수구부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곽한결에게 떡볶이 한 컵을 사주었다. 그건 평소에도 가끔가다 누구에게나 선뜻 베푸는 선심 같은 것이었고, 별 것 아니었다. 그때 ...
"음-" 소리가 끊기지 않고 희한한 음계의 허밍처럼 이어진다. "모르겠는데. 난 신경 써 본 적이 없어서." 외수가 만화책에 푹 빠져선 중얼거린다. 신경이 아주 딴 데로 가 있는 투다.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해서 대답을 기대했더니. 늘 이런 식이지. 이럴 거면 헤어져! 그런 말을 해버릴까 고민되는 찰나였다. "근데, 니 말이 맞아. 사실 석연찮긴 한데 따로 ...
예쁘게 깎은 사과가 담긴 접시를 들고 거실로 오는 악마. 소파에 앉는 악마. 협탁에 접시를 놓고 사과 하나를 포크로 찍어 먹는다. 창문이 모두 열려 있어 바람이 드나들고 있다. 악마의 머리칼이 이리저리 흩날린다. 머리칼을 넘겨도 자꾸만 얼굴로 넘어온다. 악마가 방문 쪽을 향해서 성화를 부른다. 대답이 없다. 또 다시 부른다. "사과 깎아놨다!" "사과 먹으...
반짝이는 왕자는 문득 깨닫고 말았다. 어느 날 하늘에서 똑 떨어진 저 천사에게 가진 것 모두를 빼앗기고 말 것이란 걸. - "동쪽 마녀님께서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스승님께서?" "네. 세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분이신데, 왕자저하의 탄생일을 기억하고 계셨나 봅니다." "글쎄요, 제리. 그건 성급한 판단인 것 같네요. 스승님은 그렇게 섬세하신 분이 아니...
찬영에게 학교란 외수의 동그란 머리를 뚫어져라 볼 수 있는 낙원이었다. 칠판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앞자리의 외수가 시야에 걸렸고, 말하자면 합법적으로 외수를 봐도 되는 것이다. 속으로 구백 번 정도 외수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현실에선 말 한 번 걸기 어려웠다. 그렇게 찬영이 아침의 일은 싹 잊고 외수를 쳐다보는 동안, 구겨진 정장 차림의 호수가 딱딱하게...
외수를 별 것도 아닌 걸로 오래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찬영의 눈은 멀어지는 새까만 머리통을 원망스럽게 쫓았다. 효경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찬영은 이미 이야기에 흥미를 잃었지만, 외수를 붙잡아두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효경과 있어야 했다. "자긴 아직 준비가 안 됐대. 그런 게 싫더라. 완벽한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는 거니?" "핑계라는 거 알잖...
걸어간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야. 금일의 기록이다. 낮은 음성과 갈라진 이음새. 안드로이드는 단지 녹음한다. 달에 남은 우리들은 무엇을 꿈꾸면 좋지? 왈츠 수업에서 고철 나부랭이들과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척 하며, 내가 나아진 것처럼 굴면서, 무엇을 얻어내고 있지? 떨리는 목소리가 기침을 뱉어냈다. 마른 기침이 오래 이어진다. 가만 듣고 있기 힘들 정도...
1. 다급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아. 숨을 들이키는 명사. 습습 후후, 습습 후후. 좋아요, 그대로 있어줘요. 노래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들리고, 턱 아래 관절은 비뚤어져 있다. 나는 이 학원의 요가 강사를 매일 관찰한다. 이름은 모르겠고, 명숙인가 뭔가 하여튼. 이름에 명 자가 들어가고, 강사 일을 하고, 잘 가르친다고도 해서 합쳐 명사라고 불린다. 대한...
이 자리에 서긴 했지만, 솔직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인류의 역사 속 수많은 차별들은 부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약자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활하게 되었으며, 당시 혐오 세력이 걱정했던 모든 일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자리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역사를 쓰고자 누구의 이름을 빌려 나서는 것입니까? 당...
"얘야, 넌 최선을 다 했어. 노력해도 안 되는 걸 만났을 때는 네 잘못이 아니란다." 하지만, 에밀리. 저는 최선을 다한 노력이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열심히 해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이 무대를 위해서 코피를 흘리고, 다리에 부상을 입었어요. 어떤 날에는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죠. 하지만 그 고통들이 내가 노력했다는 증거가...
다섯 번의 전투가 있었고, 우리는, 다시 말해 인간은 패배했습니다. 외계물질은 인간이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침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단 다섯 번의 전투로 전세계는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복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이 모두 죽고 나니 길들여진 동물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고, 지킬 게 없는 AI들이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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